• 입력 2015.05.24 08:25
  • 수정 2018.01.19 10:45

자연철학 깃든 정원을 펼치는 석창 임영재

[월간가드닝=2015년 6월호] 조경과 정원, 그리고 원예의 삶 속에서 철학을 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석창 (石菖) 임영재 선생. 정원의 근원과 흐름에 대한 궁금함에 고양꽃박람회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는 17일간 고양 꽃박람회에서 ㈜안스그린월드와 함께 정원 작품을 선보였다.
▲ 임영재 (사)푸르미회 고문

2015 코리아가든쇼가 펼쳐지고 정원의 붐이 최고조인 5월 초순께였다. 뜨거운 봄 햇살을 피해 고양호수공원에 조성된 정원의 휴게공간에 임영재 (사)푸르미회 고문과 마주보며 앉았다. 한국 전통조경 및 정원계 대선배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기자의 오전 일정은 모두 비웠다.

그는 운정 한도(雲汀 韓島, 1885~1978) 선생의 제자다. 한도 선생은 한국 조원업이 전문화되지 못했던 시대에 이미 조경과 정원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바탕으로 전통정원을 잇는 인물이다. 그때 임영재 고문과 인연이 됐다. 임 고문에게는 지금까지도 스승을 만난건 운이라고 회상한다.

한도 선생은 1960년대 종로구 세검정의 비닐하우스에서 후학들에게 조경과 정원을 가르치고자 그 당시 대학 3곳의 조경학과 학생들을 추천 받았다. 요즘 말로 소위 그룹과외라 할 수 있겠다. 이때 당시 임 고문도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당시 심우경 고대 명예교수도 한도 선생의 제자였다.

 

오행오석 등 돌 풍수적인 조경 공부, 쾌적한 곳이 좋은 조경이다
스승에게 배운 것 중 어떤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느냐고 물으니, 그는 단번에 ‘풍수’ 라고 했다.

“돌 20덩이를 갖다 놓고 돌 배치를 설명하더라. 음양오행설로 세상을 읽는 돌 연출방법인 오행석이석, 오행오석 등을 배웠다. 지형석, 기각석, 채정석 등 모래상자를 주어 스스로 꾸미게 했다. 이런 교육방법은 지금도 없다” 그 당시 우스운 강의라 생각했다는 그는 지금에 와서 그 공부가 현재 정원의 철학을 이해하는 기본이 됐다.

그는 그렇게 돌 연출 등의 풍수를 배우며, 정원에서 풍수의 적용에 대한 조상들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사당 주변 어두운 곳은 소나무로, 어머니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독대가 있는 공간은 부드러운 나무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은 매화나 목단 등 문화가 있는 정원수를 심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든 선조들의 이해와 합리성이 높은 정원을 배웠다.

그러면 좋은 터는 어디냐 물으니 임 이사는 쾌적한 곳 이라고 했다. 어디든 쾌적한 곳이면 명당이라는 것. 임 이사는 “아무리 집을 잘 짓고, 나무를 예쁘게 잘 심어도 쾌적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자연의 가치를 볼 수 없다” 는 설명이다.

그렇게 그는 당시 광복 후 일본식 정원 양식의 잔재가 남겨진 국내 현실에 풍수, 차경 등 여러 조경과 정원의 원류를 한국식 정원 양식을 연구하는 한도 선생에게 배웠다.

평생을 동양의 자연철학에 관해 공부한 탓인가. 후학들에게 조경 또는 정원을 공부하려면 한국정원을 먼저 공부할 것을 권했다. 유럽, 미국에서 디자인을 배우던 간에 “한국정원을 먼저 공부하고 유럽정원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유럽정원에서 숨은 한국정원의 요소를 볼 수 있게 된다” 고 그는 말했다.

 

인문학으로 귀결되는 상상의 정원
임 고문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정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위로받고, 보듬어주고 , 편안해지고 싶은 것이 정서이다. 고향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추억들을 담고 있는 공간, 그런 곳이다”라고 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 도시로 나와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고 다시 고향으로 가게 되면 아득한 그리움으로 멈춰 돌아올 줄 모르는 것. 그게 향수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사상을 느끼게 하는 것, 향수가 바로 한국 정원의 사상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정원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재밌는 일화를 들려줬다. “좋은 대학을 나와 가든디자인을 한 30대 중반 여성이 있었다. 내가 그 젊은이와 정원과 관련해 논했는데 마음속으로 ‘졌다’ 라고 시인했다.”

사회의 성장에 자신의 사고가 따라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자신은 고정관념을 넘지 못하지만 젊은 이들은 자유롭게 틀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습득한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임 고문은 가둬진 틀 안에서 벗어나 자연철학에 대한 눈을 뜰 것을 후학들에게 요구했다. 가난한 시절에서 벗어나 양에서 질로 그리고 멋으로 높은 문화 수준에 노출되면서 인문학으로 귀결되는 시대적 흐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자연부터 음식, 생활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발 빠른 사람들은 인문학을 통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그는 소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을 통해 명상하고 마음을 수양해 얻는 마음의 정원이라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했다.

기가 막히게도 이런 생각에 동조한 사람이 동문수학했던 심우경 교수이다. “그 친구하곤 잘 만나지도 못한다. 하지만 날 더워지면 옷장에 겨울옷을 집어넣는 듯 일반적 문화 또는 형태에 반응하는 이의 생각은 같기 마련이다. 그 친구 입에서 나온 것도 바로 인문학이 자연철학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더라. 꾸미지 않아도 많은 자연을 담을 수 있는 공간, 바로 상상의 정원으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고민하고 결론지었던 마음정원과 상통하는 의미다”

▲ 평택에 있는 유년의 뜰

 

스승을 위해 찾은 석창포, 인생의 반려가 되어
그의 호가 석창이듯 석창포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의 뜰에서 보여준 수 천 개의 주조된 돌 위에 마치 원래 돌 안에서 씨가 발아되어 자란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과학이라고 맹신하는 것을 싫어하는 임 고문은 이것은 ‘과학’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석창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석창포를 시작하게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승이 토종 석창포를 너무나 좋아했다. 내가 탄월 박종화 시인(1901~1981)의 일을 도와줄 일이 있었다. 지금의 서울 신세계 옥상에 석창포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가 끝나고 박종화 선생을 졸라서 석창포 하나를 귀하게 얻었다. 기뻐하실 스승의 얼굴을 생각하며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스승은 일본에서 들어온 변종 석창포는 마음에 안든다며 받지 않으시더라.” 임 고문은 아까워 버리지 못해 기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십 년 동안 석창포를 연구하고 키워오면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갖는 등 애정을 갖고 이어오고 있다.

사실 세미원도 이 석창포 때문에 발전하고, 조성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남양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석창포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방문했다고 한다. 석창포와 항아리에 담은 연꽃 등을 보고 전시회에 감동해 지원을 약속, 세미원의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되어 세미원의 조성과 변신에 참여하게 됐다. 현재 연간 2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그를 알아보는 젊은 지인들과 인사를 건네거나 통화를 했다.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고희(古稀)에 가까움에도 30년 넘게 나이 어린 후배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절로 숙연해진다.

임영재
운정 한도 선생의 제자로 자연철학을 전하는 조경인이면서 원예인이다. 특히 (사)푸르미회 고문을 맡고 있으면서 꽃문화진흥, 한국수석회, 분재협회 등에 소속되어 30년 가까이 활동해 오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양평의 세미원, 이화원 조경 등이다. 인생에서 한도선생을 스승으로 모셨고, 그 가르침으로 현재까지 본인의 정원 철학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미원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옛 선조들의 정신을 담아 세미원이라 명명하고 그 정신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이훈석 (재)세미원 대표이사와 함께 세미원 조성에 참여했다.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으로 연못 6개에 수련‧창포를 심어놓아 환경교육장소로도 사용된다. 상춘원에는 조상들이 자연환경을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이해할 수 있는 전시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세미원에 들어서면 팔당호의 물을 그대로 끌어드려 디딤돌을 깔고 창포로 길을 열어 관람객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제공하면서 걷게 하는 숨은 명소가 있다.

면적_ 16만5289㎡
위치_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세미원

▲ 세미원에 들어서면 보이는 곳이다. 팔당호의 물을 그대로 끌어들여 디딤돌을 깔았다. 창포로 수로의 길을 연 이 곳은 관람객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제공하면서 걷게 하는 숨은 명소다.

국사원(國思圓)
나라를 잃은 설움을 잘 아는 우리에게 소중히 지켜야 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보여주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자 한반도의 형상을 본뜬 연못을 조성했다. 실제 백두산의 돌과 흙 그리고 백두산에 자생하는 식물들로 구성했고 백의(白衣)민족을 나타내고자 백색 수련을 심었다. 이 연못에는 백두산, 제주 화산섬도 볼거리이지만 광개토대왕비까지 나타내고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거쳐 한반도 주위를 휘도는 곡수(曲水)로, ‘우리내’라고 하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 ‘우리내’에는 한발 한발 밟으며 나라를 생각해 보자는 징검다리가 있다.

▲ 국사원(國思圓)

장독대 분수
장독대 분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한강물을 살아 숨쉬는 청정한 물로 만들겠다는 경기도민과 양평군민들의 의지를 담아 조성했다고 한다.

▲ 장독대 분수

상춘원
금강산도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석가산 금강산이다. 가산(假山)이란 동양에서 정원을 만들 때 산악을 본뜬 조경물을 설치한 데서 비롯됐다. 조선 3대 화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실물화했는데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봉우리 위 절간까지 표현, 식물을 식재한 조형물은 가히 일품이다.

▲ 상춘원

창순루
그동안 기록에만 있던 궁중 온실을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동궐도(東闕圖) 속에서 찾아내어 복원했다. 궁중에서 겨울철에 대전(大殿)이나 왕대비전(王大妃殿)에 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 운영 되었던 온실입니다.

▲ 창순루

이밖에도 고려판 이동식 정자라 부르는 ‘사륜정’, 1450년 산가요록에 기록된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 사륜정

유년의 뜰
임 고문의 부인이 어린 시절 살던 지금의 집과 정원은 마을에서 꽤 알려진 부잣집이었다. 그래서 늘 동네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집과 정원을 구경하곤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이 이야기를 들은 임 고문은 아내에게 현재의 집과 마당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정원의 제목을 ‘유년의 뜰’이라 했다. 땅과 인연을 맺고 정원을 가꾸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면 그의 정원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본지 2014년 12월호 가든포트폴리오 중에서)

위치_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오래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정원이 좋은 정원이다. 오래된 정원이라 늙고, 조경의 질서는 없지만 정원에서 여러 가드닝 공부를 해온 이야기가 있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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